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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을 철학으로, 파롤과 랑그란?언어학을 철학으로, 파롤과 랑그란?
Posted at 2010/03/07 21:07 | Posted in 사회세상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언어가 존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각 언어 내 에도 다양성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넘어간다. 언어에는 발음, 맥락, 어조 등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 이러한 차이의 중요성을 역설한 사람이 바로 소쉬르이다.
일제강점기에 독립투쟁을 하던 경상도 사람과 함경도 사람이 만났다
함경도 사람이 밀봉을 한 비밀 편지를 경상도 사람에게 건네주자 경상도 사람이 말했다.
"이게 뭐꼬"
함경도 사람이 대답했다
"뭐꼬가 무시기?"
다시 경상도 사람이 대답했다.
"무시기가 뭐꼬?"
"뭐꼬가 무시기?"
이렇게 서로는 한나절 묻기만 하였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겠지만 한 민족의 언어내에서도 사투리가 심하면 알아들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있다. 육지 사람이 제주도 방언을 못알아 듣는 것처럼.
물론 경상도 사람과 함경도 사람이 하던 "뭐꼬가 무시기","무시기가 뭐꼬"는 같은 말이다. "무엇이 무엇?"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서로 못알아 들으니 대화가 끝지 나지 않을 수 밖에.
이렇게 같은 내용의 언어가 사람마다 달라지는 것을 소쉬르는 파롤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다양한 파롤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을 랑그라고 부른다. 파롤은 사투리, 어조, 높낮이 등의 말하는 사람의 일회적인 발언이다. 그렇기에 말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랑그는 다르다. 랑그란 문법 따위를 통해 사람들이 언어 사용에 관해 합의하고 약속한 규칙들의 체계 전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랑그는 불변한다.
랑그가 없으면 파롤은 존재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외국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라는 말을 "여행을 가고 외국으로 싶어 나는"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못 알아 듣는다. 물론 대략적인 감으로 맞출수는 있지만 좀 더 복잡한 문장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랑그의 파괴이다. 파롤과 랑그의 관계는 나무와 뿌리와의 관계가 비슷하다. 랑그가 뿌리의 역할을 하여 나무, 즉 파롤을 받치는 관계이다. 랑그가 본질이라면 파롤은 현상이다. 본질이 없는 현상은 존재할 수 없듯이 랑그가 없다면 파롤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본질은 반드시 현상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랑그는 그 자체로는 드러나지 못하고 언제나 파롤을 통해서만 나타난다. 바로 랑그와 파롤의 기묘한 관계이다.
소쉬르는 랑그와 파롤의 구분이 전제되어야지만 언어학이 성립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 주장이 옳지 않다면 언어학은 어학과 같은 개념이 되어버리고 각 언어마다의 언어학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각 언어의 발언을 파롤로 구분하고 모든 언어의 바탕이 되는 것을 랑그로 묶어놓으면 그런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소쉬르는 언어가 과연 그 지시대상과 관련을 가지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의성어나 의태어 혹은 한자와 같은 상형문자는 말과 대상의 관계를 쉽게 추리해 낼 수 있다. 예를들어 보자. 개(犬)라는 단어는 한자로는 개의 형상을 뜬 상형문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개'다르다. 한국어의 '개'는 개처럼 생기지도 않았고 닮지도 않았다. 또한 의성어나 의태어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개'가 '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렇게 배워왔고 선입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생각에 의문을 품은 소쉬르의 주장은 가히 혁명적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언어 기호의 전체성은 다른 요소들과 맺는 관계의 차이에 의해서만 규정된다. 여기서 소쉬르는 언어 기호를 기표과 기의로 나누는데, 기표는 '표시하는 것'이고 기의란 '표시되는 것'을 의미한다. '개'(기의)는 말이나 소가 아니기 때문에 개(기표)가 되는것이다.
소쉬르의 언어학이 혁명적인 이유는 바로 기표와 기의의 자의성을 밝혔다는 데 있다. 소쉬르는 자신이 언어학자일 뿐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의 언어학을 철학으로 연장시키려 하지도 않았지만, 그의 혁명적 발견은 엄청난 철학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통 철학은 확실성의 철학이었으며 동일성의 철학이었다. 하지만 소쉬르에게는 동일성보다는 차이가, 실체보다는 관계가 중요했다. 언어 기호들은 서로 간에 차이를 통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마이너스 없이 플러스의 개념이 없듯이 언어라는 랑그도 독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기의와 무관한 기표들로 이루어진 그물이다.
파롤은 발언자가 주체가 되지만 랑그는 그렇지 않다. 랑그는 사회적으로 집합적으로 약속된 언어의 규칙 체계이므로 랑그를 이용하기 위해 각 개인은 그 규칙을 따라야 한다. 더군다나 기표가 기의와 무관하므로 각 개인은 실제 사물을 통해서 랑그를 하나하나 배워나갈 수도 없다. 여기서 인간과 언어의 전통적인 관계는 인간이 언어의 주인이 아니라 언어가 인간의 주인으로 역전된다. 이렇게 인간을 중심에서 끌어내리고 언어구조를 중심에 가져다 놓았다는 점에서 소쉬르는 구조주의의 기반을 다진 인물로 평가된다. 또한 소쉬르 이후 언어학은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로 자리 잡는다. 물론 여전히 전통적 철학의 기세가 줄어들진 않겠지만 언어학의 철학적 입지를 다지고 퍼트린것은 소쉬르의 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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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언어학 위에 랑그, 랑그 위에 파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