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역사속의 우유.우리나라 역사속의 우유.
Posted at 2010/03/09 22:51 | Posted in 문화젖소의 젖샘에서 분비되는 특유한 향미와 단맛을 지닌 흰색의 불투명한 액체. 사전적 의미에서의 우유이다. 오늘날 우유는 많은 사람들이 마시는 음료이자, 식사대용, 영양식이다. 흰우유 뿐만 아니라 가공된 초코우유나 딸기우유와 같은 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단순하게 마시는 것부터 아이스크림이나 음식에도 들어가고 특히 빵류에는 거의 모두 우유가 들어간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유짜는 모습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넓은 초원에서 밀짚모자 쓴 사람이 피부가 얼룩덜룩한 젖소의 젖을 짜고 있는 모습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일것이다. 아무래도 서양느낌이 물씬나는 음료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우유를 먹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조선시대부터 우유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우유의 기원은 고려시대 충렬왕때의 기록을 통해 알수 있다. 물론 삼국시대에도 먹을 것으로 추정되기는 한다. 일본 낙농의 시조로 고구려사람 복상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충렬왕이 살았던 시대는 한창몽고의 풍속이나 언어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우유를 먹는 몽고인의 풍습이 이때 전해져 우유를 전담하는 유우소가 이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대의 우유는 죽처럼 조리되어 약과 같이 쓰였다고 한다. 양도 적고 워낙 유행하지 않았던 때라 그랬던 것 같다.
조선시대의 우유는 오늘날처럼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음료가 아니라 스페셜리스트들, 즉 높은사람들을 위한 특별식이었다. 세종 5년에는 세종대왕이 양녕대군에게 우유를 먹이도록 하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아마 자신에게 임금자리를 양보하고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형의 건강을 생각한 세종대왕이 배려가 아니었을까 한다. 어쨌든 이렇듯 우유는 임금님이나 타 왕족들에게 진상하게 되어있던 특별한 음식이었다.
한 기록에서는 유우소가 일하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 줄이고 다른 관청에 편입시키자는 상소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유우소가 낭비라는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의 주장이 나날이 이어졌고 이들은 세종대왕을 불편하게 했다. 게다가 유학자들의 불만도 이어졌다. 사람도 아니고 소가 짠 젖을 어떻게 사람이 먹을 수 있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또한 그때는 특별히 젖을 짜는 소가 있던 것이 아니어서 얼마 안되는 한우의 젖을 짜내곤 했는데 송아지가 먹어도 부족한 것을 사람들이 뺏어 먹는것이 유교적 가르침에 어긋낫기 때문이리라,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세종대왕은 유우소를 없애게 되었다.
이후 1902년에 한 프랑스인이 젖소를 길러 우유를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시간이 흘러 1937년 경성우유협동조합이 시유를 시작했고 전쟁을 치르고 소강상태였던 우유 산업이 축산진흥 5개년 계획을 통해 발전하여 1962년에 생긴 서울우유협동조합이 우리나라의 우유보편화를 이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부터 우유를 약으로 쓰고 특별식으로 먹었다. 현대에는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우유가 지켜주고 있다. 앞으로 여러방향으로 더 발전해 나갈 우유산업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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