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해 죽는다 - 세포자살모두를 위해 죽는다 - 세포자살
Posted at 2010/03/01 02:20 | Posted in 과학사람의 몸은 어떤 시스템에 의해 짜여 있고, 인간은 평생을 그 시스템이 계획하고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게 된다. 이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서는 세포 하나하나의 협조가 필수적이며, 이 협조를 바탕으로 몸은 필요한 물질을 분비하고 필요한 행동을 하며 궁극적으로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내려 노력한다.
인체는 약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 많은 수의 세포들은 체내 곳곳에서 맡은 바 역할에 따라 충실히 작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이 전체주의적 구조에 의해 완벽히 돌아가는 인체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아나키스트'들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 제거된다. 이 아나키스트들이 너무 커지면 이들은 결국 반란을 일으켜 수술로 떼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오지만, 인체는 최악의 상황이 닥치기 전에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존재를 없애려 노력한다. 그 노력에 의해 '세포자살'이라는 명령체계가 생겨났다.
![]() B0006421 Breast cancer cells by crafty_dame |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이 명령체계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례로 예쁜꼬마선충(Caenorhabditis elegans)은 수정 후 분화 과정에서 정확하게 131개의 세포를 제거한다. 처음에 학자들은 이것이 어떤 독이나 기관 손상에 의한 세포의 죽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포 제거 과정에서의 정확성과 계획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앤드류 와일리는 이 현상을 세포사(Apoptosis)라 명명했다.
![]() Apoptotic cells in C. elegans by TheJCB |
세포가 죽으면 죽는거지 세포사는 또 무엇인가? 세포가 죽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괴사(Necrosis)이고, 하나는 세포사(Apoptosis)이다. 괴사는 세포사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넘어지거나 어디에 긁히거나 해서 피가 났을 때, 시간이 좀 지나면 상처에 시커멓고 딱딱한 뭔가가 생긴다. 상처에 딱지가 앉는 현상은 괴사의 가장 흔한 형태이며, 외부의 충격이나 독소에 의해서 세포가 손상을 받거나 저산소 상태에 빠지거나, 에너지가 전부 떨어지면 괴사가 일어난다. 괴사가 일어나면 세포는 한없이 부풀어오르다가 폭발해버리면서 몸안에 있는 것들을 전부 뱉어내고, 그로 인해 세포 내의 DNA와 기관들은 마구 찢겨나가고 이 잔여물로 인해 주위 세포에 염증이 생긴다. 즉, 우리 몸에서 괴사가 일어날 경우 고통이 수반되며 모양새 또한 보기에 매우 좋지 못하다. 반면 세포가 분열을 하다가 실수를 해서 손상을 입었거나, 또는 다른 이유로 인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 몸은 이 세포에게 '아름답고 깔끔하게' 죽도록 명령을 내린다. 자살명령을 받은 세포는 스스로 에너지를 소비해서 자신의 핵을 점차 압축시키며, 세포의 원형질막에 기포를 만들어낸다. 이 경우 세포사를 진행중인 세포의 이웃에 있는 세포가 해당 세포를 먹어치우게 되며 염증은 없다. 손가락 사이사이를 보자. 대부분 우리의 손가락은 깔끔하게 분리된 10개다. 우리가 배아기 때, 엄마 뱃속에 있을 땐 이게 다 물갈퀴였다. 하지만 배아가 발달하면서 물갈퀴 자리에 있던 세포들은 그들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게 될 것임을 알고 있는 조절 회로의 명령에 의해 자살했다. 괴사한 세포가 딱지와 같은 지저분한 증거를 남기는 것과 달리, 세포사라는 명예롭고 계획적인 죽음을 맞이한 세포들은 자취가 남지 않는다. 마치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이 보인다. 이것이 그리스어로 '잎이 떨어져 내리다(falling off)'란 뜻의 세포사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우리는 우리의 DNA, 유전자가 자신의 형질을 최대한 많은 자손에게 전달해 살아남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DNA가 우리 몸을 이용해 최대한 오래 살아남으려면, 그 시스템이 완벽하면 완벽할수록 좋을 것이다. 세포자살은 이 완벽한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어떤 세포가 병이 들었거나, 질식하거나, 잘못 생겨나서 별로 필요없게 된다던지, 아니면 치명적인 결함으로 옆에 잘 살아가고 있는 정상 세포에 피해를 주게 될 것이라던지 하는 상황이 생겨나면 세포는 자신의 뒤에 남은 모두를 위해 기꺼이 죽어주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활발히 진행된 세포사에 대한 연구는 실제로 세포의 이러한 행동이 우리 몸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암세포의 경우에도, 세포가 너무나 심각한 실수를 저질러서 자가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우리 몸은 세포에게 자살할 것을 명령한다. 10억 개에 달하는 세포가 매일 이렇게 죽는다. 1년 동안 사라져가는 세포의 무게를 재면 우리의 몸무게와도 맞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세포를 잃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일일지도 모른다. 해당 세포에게 자신의 손상을 회복할 더 많은 시간을 주거나 회복하기에 충분한 양분을 주는 방법으로도 세포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인체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방법은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판명되었다. 완전하지 않은, 더이상 필요치 않은 세포는 과감히 제거되며 이는 세포 뿐만 아니라 우리 몸 전체의 완벽성을 유지하는데 더없이 훌륭한 방법이다. 60조 개의 세포 중 10억개는 매일 '모두를 위해 죽는다'.
사진자료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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